울진대게, 하이원

예전에 가지고 있던 소원 가운데 하나가, 3월에 폭설이 내렸을 때 평일에 스키타러 가는 거였다.
회사에 매여있는 사람이라면 쉽지 않은 일임엔 분명하다.

화요일에 눈이 왔다는 소식에, 눈꽃도 보고 싶고 오랜만에 스키도 타고 싶어서 수요일 먼길 나섰다.
가는 김에 요즘 살이 계속 오른다는 대게도 먹고 싶어, 일단 울진 후포항을 네비게이션에 찍고 출발했다.

영주 IC를 나와서도 한참을 달렸다. 확실히 울진은 영덕에 비해 가는 길이 좋지 않은 것 같다.

구불구불길을 한참 올라가니 구주령이다. 이런 길 다닐때마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곳을 어떻게 넘어다녔을까 싶다.

그래도 정상이라고 눈도 제법 많이 남아 있다. 날은 흐리고 갈길은 멀고 출발은 늦게했고... 서둘러야겠다.

올해는 제대로 눈꽃을 보지 못했다. 몇년전 오대산 월정사에서 느꼈던 환상적인 풍경은 아니어도, 그래도 보고 싶었는데 참 아쉬웠다. 오늘도 기대를 했는데 길가에 치워놓은 눈 외엔 거의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 구주령을 넘어가다보니 맞은 편 산이... 오오, 눈꽃을 바로 앞에서 보는 건 아니지만 너무너무 멋지다!
이런 멋진 풍경을 달리는 차안에서 잘 찍어준 아내에게 감사^^

드디어 후포항 도착. 죽변항으로 갔으면 더 일찍 갔겠지만, 이번에 봐둔 집이 이곳에 있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오후 6시가 되니 제법 어두워졌다. 숙소까지 갈 길이 걱정이다.

오늘 우리의 저녁이 되줄 녀석들. 다리에 살이 거의 가득 찬 넘들로만 골라주셨다. 대게 세마리와 보너스로 홍게 세 마리 더 해서 3만원. 사진으로는 작아보이지만, 정말 다리는 살 100% 차 있었다. 현지와서 사먹는 보람이 있다. 흐흐, 완전 거저먹기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어 잠깐 들리는 곳은 항상 아쉽다. 얼마전에 들린 속초 대포항, 안면도 백사장 항구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 주차장도 현대적 시설로 갖추고 주차비를 받거나, 깨끗한 큰 건물로 된 곳들과는 다르다.
물론 이 항구가 시골마을의 조그마한 곳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정말 바다냄새가 나는 항구같은 느낌이 난다는 말이다.

해가 저문다... 빨리 가자.

숙소까지 두시간이 넘게 걸렸다. 하지만 그 시간내내 아내와 이야기 하느라 빛줄기 하나 없는 어두운 국도를 따라 달리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하나보다 둘이 좋은 이유다.

정말 배부른 저녁을 늦게서야 먹고, 다음날 아침 기운내서 스키장으로 나섰다.
오랜만에 땡스키... 에 가까운 오전스키를 타본다.
눈으로 덮인 슬로프는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 슬로프에 정말 사람 없다. 아싸, 신난다~

음... 하지만 설질은 기대 이하다. 초보 관광스키어로서 이런 습설은 타기 쉽지 않다. 특히 우리처럼 짧은 스키보드를 타는 사람들에겐 습설의 눈더미는 넘어지기 딱 좋은 환경이다.
그래도 사람이 거의 없어 눈더미가 크게 만들어지지 않으니 다행이다.

오는 길 내내 볼 수 없던 눈꽃이 슬로프 주변에서야 보인다. 인공 눈꽃이겠지만 그래도 예쁘다.

흐흐, 슬로프 완전 전세냈다. 상단부는 그래도 정설된 눈을 사람들이 많이 쓸고 다니지 않아서인지 상태가 괜찮았는데 하단부로 내려오면서부터는 온도도 높고 여러 슬로프가 만나는 부분이라 그런지 완전 습설 상태다. 오전 11시도 안되서부터 말이다.

빅토리아쪽은 오픈을 안한것 같다. 리프트가 움직이질 않는다. 눈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오픈 때는 저 정도만으로도 탔을거 같은데.

올 한시즌 잘 지내준 우리 스키보드. 지난 시즌 거 이긴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여전히 잘 휘어주는데~

반나절 타는것도 이젠 왜 이리 힘든지. 더더욱이 마운틴 콘도쪽으로 가기 위해 아테나2를 타려고 했더니 중간이 끊겨있다. 저 자동보드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서야 허브가 나타났다. 앞서가던 보더 두 분은 걸어가니 순식간에 없어졌지만 우리는 내내 서서 갔다. -.-

에어건으로 스키를 손질할 때부터 서서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서울까지 돌아가야 하는데 걱정이다.
서둘러 출발해서 고속도로 진입하니 빗발이 제법 굵어진다. 1에서 잘해야 5mm 온다는 비가 이정도인가?
역시 일기예보는 천기누설이라 그런지 쉽지 않은가 보다.
힘든 짧은 여행이었지만 많은 이야기와, 대게, 그리고 간만에 재미있게 탔던 "3월 평일" 스키로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