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13. 23:00

귀싸대기 강풍과 함께한 탑사, 노고단 그리고 청보리밭

지난 한 주동안 내내 따뜻했던 날씨가 우리의 여행날짜가 되자 역시 또 추워진단다.
그래도 벚꽃이 만개했으리라 기대하고 4/12 늦은 벚꽃여행을 떠났다.

일단 진안 마이산으로 향했다.
사진 책자에서 본 포인트로 올라가서 마이산 주변을 내려다보면 십리에 걸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겠지...

그러나 마이산은 다음 사진과 같이 엄청난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


정말 꽃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제일 마지막에나 핀다더니... 그래도 그렇지 4월 중순에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신경할 수 있을까 싶다. 이 넘의 벚꽃자슥들!!!

그래도 온 김에 탑사를 둘러보기로 한다.
예전에 마이산에 처음 왔을 때는 별다른 정보도 없이 오는 바람에, 산행할 때 가는 북부 주차장으로 가서 남부 주차장까지 걸어갔었다.
남부 주차장에 가면 북부로 가는 버스 하나 없겠냐는 토키의 말만 믿고 ㅠㅠ
결국 파김치가 된 상태에서 버스는 커녕 택시도 없는 주차장에서 주구장창 뻗어있을 뻔 하다
맘씨 좋은 분 승합차를 얻어타고 북부주차장까지 편히 갔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탑사를 구경할 분들은 남부주차장으로 가면 된다.


탑사로 가는 길에 만나는 저수지. 다른 분들 사진에 보면 벚꽃이 만발해 있던데...


그저 썰렁한 모습뿐... -.-


그래도 탑사에 오니 아쉬움이 가신다.
예전에 왔을 때는 힘들어서 제대로 구경도 못했었는데.


조그마한 대웅전 앞으로 올라가서 탑들을 내려다 보니 더욱 대단한 생각이 든다.


탑사를 뒤로 하고 다시 남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새로 지은 듯한 금각사 건물 앞에는 코끼리 바위라고 하나 있는데...
저렇게 그림을 그려놓지 않았다면 글쎄다...


정말 썰렁하기 그지없는 남부주차장 앞 벚꽃나무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지리산 성삼재 휴게소 방향으로 달린다.
한번도 노고단에 못가본 토키와 함께 오르기 위해 제일 편한 노고단 등반길을 골랐다.
내일 아침에 오르기로 하고 적당한 숙소를 찾으러 가는 길인데, 성삼재 휴게소 근방부터 화엄사 근처 길까지 온통 벚꽃 천지다~


맑았던 날씨가 탑사를 내려올 때부터 구름으로 가득차더니 날도 어둑어둑해졌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라도 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다음날 13일 아침. 바람이 매섭긴 하지만 맑은 하늘에 다시 보는 벚꽃이 예쁘기만 하다.
성삼재 휴게소로 가는 길 내내 눈이 즐겁다.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
해발 1110m 이니 제법 높이 차로 왔다. 하긴 20여년전 이곳에 다닐때는 아예 노고단 산장까지 버스들조차 다녔었지.
아침 9:50. 현재 영하 1도. 바람까지 좀 불어서 체감온도는 훨씬 이하일 듯 싶지만, 천천히 오르다보면 몸에서 열도 나고
온도도 오르면서 괜찮겠지 생각했다.
참,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다 -.-


노고단 가는 길은 너무나 평화롭다.
사진속에서만 ㅠㅠ


멀리서 볼 때부터 산이 새하얗게 보여서 설마 눈이 온건 아니겠지, 4월 중순에 눈꽃을 보는 건 아니겠지 했다.


눈꽃이 아니고 얼음꽃이 폈다. 아주아주 활짝!!!


가는 길 내내 좌우로 얼음꽃이 우리를 맞이한다.
영락없는 나니아 연대기 1편 영화속 장면이다.


바람이 어찌나 거센지 필름을 빨리 돌리는 것처럼 구름이 흘러다닌다.
방금전까지 푸르던 하늘이 순식간에 구름으로 덮이기도 하고...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또 하늘이 푸르다.


노고단 고개로 향하는 갈림길. 왼편 짧은 계단길을 선택했다.
얼음꽃으로 가득한 풍경이 계속 살떨리게 한다.


이런 돌길을 올라가니...


노고단 정상으로 오르기 위한 마지막 넓은 터가 나왔다.


어쩜 사진은 이렇게도 평화로울까. 정말 얄미울 정도로 사기스럽다 ㅠㅠ


정상을 향하여 출발하려는데 방금 정상에서 내려온 두 분이 엄청 수다스럽다.
어떻게 이렇게 추울까, 여기는 정말 살거 같다 등등. 좀 춥긴하지만 그래도 좀 과하다 싶었다.


잘 만들어진 나무판자 길을 오르기 시작하자마자 바람이 얼굴을 때리기 시작한다.
좌우에 늘어선 얼음꽃들, 길 바닥에 얼음조각들, 바람에 날아다니는 얼음조각들까지. 아, 미치겠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에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한다.
길 바닥에 얼음이 많아 미끄러운데 난간은 완전 얼음 천지라 잡지도 못하겠고 진퇴양난이다.


토키와 함께 팔짱을 끼고 걷는데도 두 사람의 발길이 똑바로 가질 못한다.
두사람의 몸을 통째로 좌우로 옮길 정도로 바람이 세다.
도저히 그냥은 걸을 수 없는 듯 싶어 결심한다. 수구리!!!

벌받을 때 하는 오리걸음 수준으로 걸어 거의 정상에 왔다.
앞에는 섬진강이 흐른다고 표지도 있고 전망을 위한 데크도 있건만 도저히 그쪽으로 갈 수가 없다.
잘하면 저 데크 뒤로 섬진강을 향해 구를 판이다.


어쨌든 노고단 정상에 도착.
잽싸게 인증샷 찍은 후 곧바로 하산시작. 아마 정상에 머무른 시간은 1분 내외일 듯 싶다 -.-


여기가 정상인데...
지금까지 산을 다녀보면서 이런 경험은 정말 처음이다.


바람이 덜 부는 지역으로 내려와 잠시 손을 녹인다.
정말 감각이 없다. 동상 걸린듯한 느낌. 카메라 배터리도 순식간에 동나는 것만 봐도 얼마나 추운지 알 수 있을 듯.
이때부터 날듯이 하산시작.
하지만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얼음꽃에서 얼음이 날아와 바람과 함께 얼굴을 때려댄다 ㅠㅠ

그래도 힘차게 달리는 우리의 목표는 오직 지리산대통밥!!!

정오가 넘은 시간에 식당에 도착해서 대통밥을 시켰다.
반찬 20가지의 대통밥을 보니 정말 살 거 같다.
맛난 반찬들과,


김이 모락모락 나던 대통밥...


곧 이렇게 됐다.


다시 살아난 우리는 쌍계사 벚꽃길로 향했다.
그런데 19번 국도가 영 아니다.


전망좋은 곳이라고 해서 잠깐 들려보니 웬지 낯익다.


찾아보니 작년 3월에 와서 찍은 사진이 쌍둥이다 -.-


이건 작년 3월말, 아직 완전히 피지 않았을 때 19번 국도변 사진이고,


이건 올해 모습이다.
아무래도 이 지역은 벌써 지기 시작한 거 같다.
적어도 어제 저녁부터 시작된 거센 바람에 많이 떨어졌던가.
이런 기구한 벚꽃 구경 팔자여...


섬진강 따라 쌍계사 벚꽃길 시작 지점 근처인 화개장터에 도착하자 쌍계사 방향으로 좌회전이 불가능할 정도로 차가 많다.
평일이고 이렇게 벚꽃시기를 못맞춰도 사람이 이렇게 많다니.
우리나라의 인구가 줄어 걱정이라는 이야기가 전혀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그냥 포기하고 하동 방향으로 달리다 일정 대폭변경해서 고창으로 방향을 돌린다.
청보리밭 축제가 아직 시작전이긴 하지만 사람없을 때 구경하고 집으로 가기로 결정.

고속도로 위 하늘은 맑고 예쁘기만 하다.


청보리밭 도착.
20여만평이라더니 정말 드넓다.


청보리밭 곳곳엔 산책로가 조성되 있다.
하늘도 푸르고 산책로도 있지만 바람은 여전히 우리 귀싸대기를 가격중 ㅠㅠ


저 뿔은 또 누가 잘라갔을까?


전망대로 올라가 흑백으로 찍어보니 영락없는 5,60년대 풍경같다.


서울 올라가는 길에 막히는 길도 피할 겸해서 간월도에 들렸다.
이미 수평선 너머로 해는 떨어져 서해의 일몰을 보지 못해 아쉽다.


예전에 이곳에서 보여주던 일몰을 떠올려본다.


서울로 올라오는 길, 집에 거의 다와서 자꾸 길을 놓친다.
아무래도 정신머리를 노고단 정상에 놓고와서 그런가싶다.